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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영화

윤희에게 동성애, 타오르지 않고 그리움으로 표현한다.

by 노래영 2020. 4. 19.

차분하고 조용하다, 깊다.

 

 윤희에게는 19살 새봄을 혼자 키우는 윤희의 이야기다. 새봄은 어느 날 엄마 앞으로 온 편지를 발견한다. 몰래 읽어 본 편지의 내용은 퍼석해 보이는 엄마와 다르게 다정한 누군가의 그리움이 담겨있었다. 새봄은 엄마와 엄마의 첫사랑을 만나게 하기 위해 엄마와 일본 오타루 여행을 계획한다. 새봄과 함께 온 여행에서 첫사랑과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윤희, 그녀의 삶과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그 속에 따듯하게 추억되는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

 

 윤희에게는 2019년에 본 영화 중에 정말 손에 꼽게 좋은 영화였다. 일본을 열심히 싫어하고 있을 때였는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면 아, 이건 일본만이 가진 감성이구나. 그런 걸 느낄 수 있었다.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조용한 오타루의 거리는 일본의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장소였다. 이 영화는 서벅서벅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있는 영환데, '눈'을 이용해서 표현했다. 눈은 차갑지만 한가득 쌓여 있으면 괜스레 따듯해 보인다. 이 영화가 그렇다 분명 윤희는 예민하고 퍼석한 느낌인데, 윤희가 쥰을 추억할 때는 따듯한 조명을 앞에 둔 것처럼 따듯해진다.

 

 영화는 배경 음악 대신 기찻길 소리들을 이용한다. 장면 장면이 적막함을 잘 표현했고, 윤희의 메마르고 퍼석하고 예민한 느낌을 잘 보여줬다. 장면 장면 예쁜 게 많아서 기억에 많이 남는데, 윤희가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던 아파트 현관. 지금은 많이 없는 옛날 아파트 긴 복도, 윤희가 걸어가면 하나씩 켜지는 복도 등이 인상 깊었고, 아빠의 무덤에 갔다가 돌아갈 때 쥰이 타던 차. 작은 봉고차가 눈길에 기울어져 세워져 있던 모습들이 예쁘다. 이 영화는 자극적이지 않은 대신 예쁘다. 차분하지만 차갑지 않고, 조용하지만 무던하진 않다. 

 

 

'동성'애가 아닌 동성'愛'를 이야기한다.

 

 윤희에게는 동성애를 다룬다기보다, 그저 윤희의 첫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첫사랑이 같은 성별인 여자일 뿐이다. 그만큼 아주 별거 아닌 듯이 표현하고, 전혀 동성임을 강조하지 않는다. 물론 후반부 동성이기 때문에 서로가 힘들었고, 멀어졌던 순간을 보여주지만 절대 그게 주된 내용이 아니다. 그저 윤희가 첫사랑에게 가지는 그리움, 따듯함을 표현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친구이자 사랑이었음을 보여준다. 잊고 있었지만 나는 그 애의 첫사랑이었음을, 너는 나의 첫사랑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동성애를 소재로 다루는 작품들은 다소 자극적인 게 많다. 아무래도 금지된 사랑을 강조하는 것도 많고, 동성이기에 포기하는 것들, 비밀스러운 것들이 많다. '동성이기 때문에'가 강조되는 작품들이 많은데, 윤희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동성이기 때문에 가 아니라, 우리가 그로 인해 헤어진 후에.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그리워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윤희에게 쥰이 보내는 편지도 그렇고, 쥰을 추억하는 윤희도 그렇고. 서로에 대한 떨림, 그리움 더 안쪽에는 그때의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고 느꼈다.

 

 누군에게나 있는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 그때 이루어지지 못 한 사랑, 그럼에도 내 마음 한편에 계속 기억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부담스럽지 않다. 동성애 역시 그저 다른 사랑과 다름없음을 느낄 수 있다. 

 

 윤희에게의 주인공 '윤희'를 연기한 김희애는 정말 연기를 잘하더라. 영화가 참 지루할 수 있었는데, 김희애가 사소한 표정, 작은 감정들을 너무 잘 표현했다. 과하지 않은 제스처와 표정연기지만 윤희가 느끼는 감정들을 보여주고 관객인 나는 윤희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었다.

 

독특한 매력의 귀여운 커플

 

 영화가 덜 지루하고 온 통 흰 색인 이 영화에서 색감이 되어준 커플이 있다. 귀여운 새봄과 경수 커플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영화에서 툭툭 튀어나와 영화를 재밌게 해 준다. 새봄의 뭔가 까칠한 듯 새침한 성격도 귀엽고 그걸 맞춰주는 경수도 귀여웠다. 일본까지 같이 온다는 게 조금 웃기기도 하고 탐정놀이하듯이 쥰을 찾아다니는 모습이 통통 튀는 매력이 있었다. 패션부터 묘하게 매력 있다.

 

 

 김소혜 배우를 아이오아이 활동할 때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있어서 과연 연기는 어떨지. 궁금했는데, 기대도 없었는데 잘해서 좋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 정말 고등학생 같았고, 새초롬한 말투를 연기하는 게 매력적이었다. 툭툭 김희애와 주고받는 대사도 좋았고 그냥 영화에서 거슬림 없었다. 새봄이라는 이름처럼 새초롬한 여학생의 연기가 매력적인 배우였다.

 

 윤희에게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깊은 감정을 담아낸다. 이미 결혼도, 이혼도 했고 아이도 키우고 있지만 첫사랑 앞에서 수줍을 수 있는 윤희의 모습을 잘 표현했고, 쥰과 쥰의 이모의 이야기도 따듯했다. 다른 상황이지만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분명한 모습이 좋았다. 그 시절의 사랑을 예쁘고 따뜻하게 담아낸 게 좋았고, 장면 장면 하나하나 신경 쓴 게 보는 사람도 느껴져서 예쁘더라. 많은 사람에게 사랑에 대해, 첫사랑의 감정에 대해 추천하고 싶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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