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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영화

전도연, 김남길의 지저분한 영화 '무뢰한'

by 노래영 2020. 2. 4.

 

 

구정물을 바라보는 기분

 

 

 잿빛이 가득한 영화다. 격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드러내지만 감춘 게 많은 주인공과 격한 액션이 강렬하지만 조용한 영화다. 장르는 하드보일드 로맨스라고 설명하는데, 사실 그냥 캐릭터와 줄거리만 놓고 보면 흔하고 흔한 남자들의 세계, 어두운 뒷골목과 로맨스 구색을 갖춰주는 여자 캐릭터 정도가 될 수 있는 영화 줄거리다. 하지만 이 영화는 로맨스 구색을 갖춰주는 여자 캐릭터, 술집 여자 김혜경이 주도해서 이끌어 나간다.

 살인범을 잡기 위해 뭐든 다 하는 형사 정재곤과 살인자의 애인인 술집 여자 김혜경. 둘 사이의 무수한 거짓과 거칠게 섞여 있는 여러 감정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짜증스럽고 예민하게 날 서 있는 감정들을 느낄 수 있고,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영화의 긴장감이 됐다. 때 묻은 캐릭터들과 지저분한 관계성, 구정물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관계도 더럽지 않은 것이 없으니.

 

 

 

 

 

어딘가에 살아 있지 않을까

 

 

 살인범의 애인, 술집 여자 김혜경. 영화를 보고 제일 크게 느낀 건 전도연의 연기력이다. 전도연이 연기 잘하는 거야 전혀 새삼스럽지 않았지만, 무뢰한에서 좀 더 크게 와닿았다. 영화가 끝나고 어쩌면 김혜경이라는 여자는 아직도 어느 뒷골목에서 살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생생하게 연기했다. 김혜경이라는 인물의 삶을 다 본 것도 아닌데, 전도연의 연기는 김혜경이라는 여자를 완전히 살아있게 만들었다. 빨간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술집 마담을 하는 김혜경, 민낯으로 정재곤에게 잡채를 만들어 주던 김혜경, 영화 엔딩 속의 김혜경까지. 캐릭터의 겉과 속,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감정선을 정말로 잘 느낄 수 있게 연기했다. 김혜경은 영화 속에서 가장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다. 영화 속 강렬한 액션을 소화하는 어떤 남자 캐릭터들 보다도 김혜경의 카리스마는 영화 전반을 이끌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정말 새삼스럽게도 다시 한번 전도연의 연기력을 실감했다.

 

+영화에 나오는 김혜경의 의상들이 대부분 전도연 개인의상이라는 걸 들었는데, 센스가 정말 뛰어나다. 극 중에서 김혜경이 입고 나오는 모든 의상들이 정말 잘 어울렸다.

 

 

 

배우 김남길의 새로운 모습

 


 사실 무뢰한 영화에 관심을 갖고, 보게 된 것은 김남길 때문이다. 2019년 드라마 '열혈사제'를 보고 김남길에게 관심이 생겨서 김남길 필모그래피의 몇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챙겨봤다. 그러고 나니 김남길에게 '무뢰한'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는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김남길은 대체로 강렬하고 극단적인 캐릭터들을 많이 연기했다. 그중에서 튄다면 무뢰한의 '정재곤'은 어떤 의미로든 조금 튀는 캐릭터다. 범인을 잡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하지만 인간성까지 잃어버리진 않았고, 사랑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감정 표현이 격하지 않지만 드러난다. 김남길은 다듬어지지 않은 것처럼 정재곤을 연기했고,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인성적이고 매력적이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정재곤은 쓴맛이 나기도 하면서 애처롭기도 한 인물이니까. 

+ 김남길의 섹시한 모습은 무뢰한 '정재곤'이야말로 최고가 아닐까 싶다.

 

 

 

 

누구 하나 오버하는 것 없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배우의 연기가 좋다. 주인공 김남길과 전도연은 물론, 분량 자체는 많지 않지만 정재곤과 김혜경의 연결고리인 살인범 박준길을 연기한 박성웅부터 비중 있는 조연 곽도원과 김민재 등 영화에 나오는 모든 배우의 연기가 적절했다. 곽도원과 김민재는 항상 잘하는 연기를 이번에도 잘 보여줬고, 박성웅은 사실 대사라던가 비중 자체가 크지 않다. 그럼에도 깔끔하게 자기 역할을 다 했다. 영화 자체가 깔끔하다. 구구절절함이 없고, 크게 요동치지 않는다. 그런 영화에서 배우들이 제 몫을 확실하게 해 줬기 때문에 '무뢰한'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즐길 거리는 배우들의 연기, 박성웅과 김남길의 주차장 액션신, 그리고 음악이다.

아름답지 않은 로맨스지만 감정적으로 와닿게 표현했고, 영화 중간에 있는 박성웅과 김남길의 액션신은 정말 좋다. 맨손 액션의 합이 굉장히 잘 맞아서 볼 때 긴장감이 아찔하다. 그리고 영화의 매력을 더해주고 영화의 개성을 드러내 주는 OST도 인상 깊다.

 

 

 

+

 

무뢰한에 관해서 찾아보던 중 전도연의 한 인터뷰가 굉장히 와닿았다.

'접속 이후의 작품 중 본인의 인생 캐릭터를 뽑아 본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무뢰한'의 김혜경 역할을 꼽으며


-남성적 누아르라는 장르 안에서 여배우가 대상으로만 비치는 관습에서 벗어나 (남성의 이야기를) 대상화한 것 같다. 이후 그 남자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은 흥미롭지 않게 됐다.


영화 '무뢰한'은 아름답지 않은 로맨스, 하드보일드 로맨스 영화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누가 나에게 '무뢰한'이라는 영화가 어떤 영화냐고 물어본다면 전도연의 답변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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